재발성 우울장애, 그리고 휴학.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와 회사 생활

나는 재발성 우울장애를 진단받은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건 약 만 8살 무렵부터로, 중, 고등학교 시기에는 병식이 없어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받지 못했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우울증은 계속 악화되었고, 이것이 불면증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즈음부터 약물과 상담 치료를 병행했다.

학부 시절에는 긴 통학 시간과 가정 내 문제,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의 부재로 상태가 계속 악화되어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언제나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뛰어들면 내일 학교 쉬어도 될 텐데” 같은 생각들을 했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된 자존감의 하락, 가정 내 소통의 문제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다행히 졸업 이후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물리적 거리가 생겼고, 돈을 벌면서 상태가 좋아져 퇴사할 무렵에는 관해 상태로 진단받기도 했다(물론 좋은 상사를 만난 덕도 크다).

회사를 다니던 중에 학부 선배와의 만남 자리에서 아키텍쳐를 다루는 일을 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을 일이 있었다.
너무나 재밌어 보이는 영역의 일들을 실제로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시스템 아키텍쳐를 다루는 연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 후 대학원을 준비해 합격하였고, 현재 서울 모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대학원, 그리고 그 이후

생각보다 연구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와 많은 차이점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어려워 했던 것은 ‘스스로 프로젝트를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하고, 진행하고, 논의하며 그에 맞춰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 달성하기 쉬운 목표만을 항상 쉽게쉽게 처리해 오던 습관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방향성을 잡은 뒤 실행해야 하는 일은 도무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 지에 대해서 감이 잡히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집에서는 스트레스를 계속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그 이외에도 문제가 계속 생겨 도저히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심박수가 치솟고 공황이 오거나 오기 직전의 상황이 지속됐다.

석사 진학 후 이제 겨우 한 학기가 지났는데, 최근 한 달 내 자살 시도만 네 번이 넘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구체적 계획과 방법에 대한 실행 일자 결정, 유서 작성, 신변 정리 등을 진행하다가도 내가 이렇게 망가졌나 싶어서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날마다 울면서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우울한 감정을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언제나 숨이 막혔다.

휴학, 그 다음은?

1학기가 끝난 방학 때부터 고민을 해 오던 휴학이었는데, 남은 세 학기를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쉬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해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다.
정신적으로 이미 지친 상태에서 연구를 지속하기란 너무 벅찼고, 나에게 지금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여러 가지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몰려 있었고 더 이상 지속하면 난 분명히 세상을 떴을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은 지금 없다.

단순히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반려견 산책을 하고, 낮에 낮잠을 자지 않도록 노력하고, 집안일을 하는 등 무너졌던 내 일상을 어떻게든 정상 궤도로 올려두기 위한 밑작업부터 할 생각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여행을 갈까 싶다.
살면서 어떻게든 버티면 버텨지니까 그렇게 살아왔던 것 뿐인데, 내가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쓴다는 것이 아직도 의미 없는 짓이 아닐까 싶은 마음은 여전히 한 켠에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난 대차게 깨지고, 구르고, 다치고, 부러질 시간이 없다.
집이 떠나가라 울고, 미친 짓들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내가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내가 신뢰하는 타인에게는 그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아끼지 않고 주었는데, 정작 나에게는 누구보다 가혹하고 잔인하게 굴었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그것을 압도하는 나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다.
퍼포먼스가 떨어져 가는 게 눈에 보였고, 그럴 때마다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불안감에 짓눌린 정신으로는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나에게 요구된 것이 10이라는 작은 수치라 한다면, 20, 아니면 100과 같이 과도하게 훌륭한 결과물들을 내보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 대한 평가는 곤두박질칠 것이고, 그렇게 효용을 잃은 나는 능력 없는 멍청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강박은 심해졌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자꾸만 일을 미뤘다.
그렇게 소모된 상태로 나를 불 속에 다시 집어넣으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루는 망가진 내가 너무 한심해 꼬박 여섯 시간을 울기도 했다.

연구 역시 자신의 자아 탐구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일단 먼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내가 무너지면 연구의 중심이 무너진다.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그걸 할 힘이 온전히 있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 쓰이기 때문에 그 힘을 기르려면 운동을 하고, 실패해도 괜찮고, 나에게 너그러워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멈추어야 할 순간에 멈췄고, 앞으로 그에 대한 consequence를 받아들이려 한다.

언제나 외치듯, 어떻게든 되겠지. 괜찮을 거야.

휴학을 고민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공대 대학원은 특히 휴학이 어렵지만, 우울증이 악화되면 나의 경우처럼 정말 온갖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나는 휴학을 고민하는 주변 대학원생이 있다면 하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물론 휴학에 대한 대가로 더 촉박해진 일정을 복학 뒤에 소화해야 하는 건 감수를 하고 진행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